지난 달 30일,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부 비판 보도에 대해 항의하면서 해경과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를 빼 달라고 요청하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녹취록이 공개되자, 이정현 의원 본인은 물론이고, 청와대와 새누리당 까지 나서 이정현 의원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강변(剛辯)하고 있다. 이 주장을 들으면서 지난해 국내를 넘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 떠올랐다. 조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은 사건이 터지자 사과는커녕 조현아 부사장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잘못을 뉘우치거나 사과하지 않고 버티다 조 부사장은 결국 구속됐다. 국민을 얕잡아 보다가 큰 코 다친 것이다.

 

정부와 새누리당도 더 이상 국민을 우습게보면 안 된다. 지난 총선에서 혼쭐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궤변에 가까운 주장으로 국민들을 속이려 하면 안 된다. 홍보담당자가 자신이 일하는 조직이나 기업과 관련된 기사에 대해 언론사에 전화해 항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 언론사가 명백한 허위사실이나 과장된 내용으로 오보를 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언론사가 국민들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사실에 근거해 취재한 내용을 보도했는데, 그 내용이 자신의 조직이나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협박과 회유를 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요, 더 나아가 국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행위일 뿐 정상적인 홍보업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 방송법 제4조 2항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홍보활동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방송보도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는 방송법 제4조 2항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로, 만약 정부와 여당이 이 전 수석의 행동을 정상적인 홍보업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곧 대한민국이 언론탄압 국가임을 자임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더 나아가, 이번 녹취록 파문은 공영방송 KBS가 얼마나 정권의 압력과 통제에 취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KBS는 국민들이 지불하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다. 정권의 눈치 보지 말고 국민의 눈치만 보고 공정한 방송을 하라고 국민들이 지불하는 수신료를 받아 운영하는 공영방송의 보도국장이 청와대 수석의 전화에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대목은 도대체 KBS가 국민들이 안중에 있기는 한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실제로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박근혜 정부의 보도개입이 “인수위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나, 박근혜 정부의 언론통제가 정권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음이 드러났다. 결국, 공영방송 KBS와 정권의 유착으로 수신료를 꼬박꼬박 지불하고 있는 국민들은 왜곡되고 편향된 보도를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로 인식하는 사기를 당한 것이다.    

 

이처럼 공영방송 KBS가 정권의 압력과 통제에 취약한 이유는 KBS 사장을 선임하는 과정에 정권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KBS 사장을 선임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KBS이사회의 구성을 보면, 여야가 각각 7명과 4명의 이사를 추천하도록 되어 있어 정권이 낙점하는 인사가 KBS 사장으로 임명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KBS가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인 공영방송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불균형한 여야의 KBS이사회 이사 추천비율을 동일한 비율로 바꿔야 한다. 나아가, 사회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인사들로 KBS 사장 추천위원회를 만들어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구현해 낼 수 있는 인사가 사장후보로 추천되고, 선임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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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