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또 한 명의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도 현직 대통령을 배출한 한국의 대표적인 사립대학인 고려대에서 조교수로 근무하던 40대 정모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포장용 노끈으로 목을 매 자살을 했다. 교수가 교내에서 자살한 것도 충격적이지만, 교수 사회에서 왕따를 당해오던 중 이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진 자살 이유는 더더욱 충격적이다.


고려대학교 인촌 기념관 | 경향신문 DB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2월 고려대 사범대학 교수로 임용된 정 교수는 공주대 출신으로 고려대 교수로 임용된 뒤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교수사회에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왕따를 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인 교수사회에서 벌어진 지방대 출신 교수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왕따가 한 젊은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대학사회에 학벌주의가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최고의 지성인이 모인 교수사회도 결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인 출신과 학벌로 상징되는 패거리주의가 여전히 존재하는 조직임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출신학교에 따라 보이지 않는 차별과 무시가 존재하는 조직 내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소위 2류로 분류되는 지방대 출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일류가 될 수 없다.

실상은 출신성분을 엄격하게 따지면서도 마치 유리천장으로 교묘하게 장막을 쳐놓아 누구나 함부로 진입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 사회구조 속에서 소위 일류 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일류가 되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엄청난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공정하지 않은 구조가 대학에 남아 있는 한 우리나라 대학이 세계일류 대학으로 발돋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들과 달리 미국의 대학들은 교수채용부터 학벌보다는 실력과 능력을 더 중요시한다. 물론 미국 대학들도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연구실적이나 경력이 뛰어난 후보가 있을 경우 출신대학에 관계없이 교수로 채용한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의 대학에는 다양한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또 일단 교수로 임용되고 나면 출신학교와는 관계없이 관심사가 같은 학문 탐구를 위해 함께 연구하는 것은 물론 교육에 관련된 정보도 교환하며 서로를 도와준다. 특히 새로 교수로 임용된 새내기 교수들에게는 이미 테뉴어(종신교수직)를 받은 교수들이 멘토로 지정되어 새내기 교수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강의와 연구활동을 도와준다. 강의시간 참관을 통해 효과적인 강의를 위한 조언을 하거나, 연구주제에 대해 함께 토의를 하거나, 심지어 새내기 교수가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상담을 해 주는 등 새내기 교수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이러한 테뉴어 교수들의 멘토 역할은 새내기 교수가 테뉴어 심사를 받을 때까지 6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우리나라 대학에도 이러한 멘토 제도가 있었다면 정 교수의 자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은 다른 조직과 달리 지성의 산실로 사회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바로잡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패거리주의를 답습하는 한 우리나라 대학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우리나라 대학들은 이제 과감한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 체질 개선은 출신이나 학벌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회가 주어지는 공정한 사회를 이루려는 노력이 있을 때, 강의실에서 울리는 공허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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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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