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들이 직접 광고주들을 찾아가 광고를 받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지금 신문사들의 광고 영업 행태를 보면 된다. 기업이 좋아할 만한 기사를 써주고 광고를 받거나 광고를 안 주면 기업의 약점을 들춰내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낸다. 전화 한 통으로 갑자기 기사가 사라지는 일도 있다. 이게 신문사들이 실제 광고효과보다 10배 이상의 광고비를 받는 비결이다. 그런데 방송사들이 광고 직접 판매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광고 판매 대행을 독점해 왔지만 2008년 11월 헌법재판소가 코바코 독점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민영 미디어렙(광고판매대행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공영 방송인 MBC를 민영 미디어렙에 넣을 것인가 아니면 공영 미디어렙에 남겨둘 것인가, 그리고 민영 미디어렙을 몇 개나 설립할 것인가, 종편을 민영 미디어렙에 포함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 등 수많은 쟁점을 남겨두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MBC를 KBS와 함께 공영 미디어렙에 남겨두고 SBS와 종편을 묶어서 민영 미디어렙에 위탁, 경쟁을 허용하면서도 방송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게 최선의 대안이겠지만 국회는 조중동매 등 종편 사업자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지지부진 입법을 미루고 있다. 째깍째깍. 재앙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이 와중에 SBS는 독자적으로 미디어렙 자회사를 설립한다는 계획이고 MBC는 내심 SBS의 직접 영업이 성공하길 바라면서 한 발 물러나 관망하고 있다.

최진봉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지상파 방송사들과 종편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죄수의 딜레마’란 다른 방에 갇힌 두 명의 범죄 용의자들이 형량을 적게 받으려고 적극적으로 범행을 자백하는 경우를 말한다. 둘 다 입을 다물면 무죄로 풀려나거나 가벼운 형벌을 받겠지만 결국 모두 자백을 하고 똑같이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된다. 최 교수는 “방송사들이 눈앞의 작은 이익에 현혹돼 최악의 선택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죄수의 딜레마. 둘 다 자백을 거부하면 3년 형을 받고 끝나겠지만 자백을 하면 형량을 감경 받을 수 있다는 유혹에 끌려 결국 둘 다 자백을 하고 무거운 형을 받게 된다.
 

다음은 최 교수와 일문일답.

- ‘조중동매’의 지면에서는 미디어렙이라는 단어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다. 민영 미디어렙 도입이 지연되고 은근슬쩍 광고 직접 판매를 시작하는 게 이들 신문이 바라는 바일 테니까. 그렇지만 방송사들의 침묵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SBS는 그렇다 치고 공영방송을 표방해 왔던 MBC까지 민영 미디어렙에 욕심을 내는 건 정말 무책임한 일 아닌가.
“MBC는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코바코 시스템에서는 지역방송이나 종교방송 등이 KBS와 MBC, SBS 등의 광고를 나눠먹고 있는데 민영 미디어렙으로 가면 혼자 다 먹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종편이 직접 영업을 하고 SBS가 빠져나가도 이를 방관하고 있는 건데. 방송이 무한 경쟁 체제로 가면 당장은 이익이 늘어나겠지만 장기적으로 MBC에도 좋을 게 없다. 시청률 경쟁이 가열되고 상업 방송으로 변질될 게 뻔하다. 공영방송이라고 떠들던 사람들이 방송의 공공성을 포기하려 하고 있다.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정말 멍청한 짓이다.”

- 코바코 시스템도 문제가 없던 건 아니었다. 문제는 코바코 독점을 깨되 어떻게 방송의 공공성을 확보할 것인가 아닌가.
“1공영 1민영이 최선의 해법이라고 본다. 제한적으로 경쟁체제를 도입하되 무한 경쟁을 막아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1사1렙으로 가면 MBC는 사실상 상업방송이 된다. 그럴 거면 차라리 MBC를 민영화시키는 게 맞다. 그동안 떠들어왔던 것처럼 자신들이 공영방송이라고 주장하려면 KBS와 함께 공영 미디어렙에 남겠다고 해야 한다. MBC가 나서야 SBS의 광고 직접 판매를 막고 종편을 민영 미디어렙에 포함시킬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를 MBC 기자들이 먼저 깨야 한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현혹돼 최악의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광고 좀 더 받겠다고 공공성을 포기할 생각인가.”

   
죄수의 딜레마와 MBC의 선택. MBC가 공영 미디어렙에 남겠다고 선언하고 종편의 광고 직접 영업을 반대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지만 지금은 다들 1사1렙으로 가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광고 시장의 파이는 거의 늘어나지 않는 대신 경쟁이 격화되면서 방송의 공공성이 붕괴될 거라는 우려가 많다.
 

- 종편과 민영 미디어렙이 끔찍한 재앙을 불러오게 될 거라는 걸 다들 안다. 그러나 지금은 뻔히 알면서도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종편은 직접 영업에 사활을 걸고 있고 방송사들도 종편을 비판하기 보다는 이참에 내심 직접 영업으로 가기를 바라고 있다. 국민들은 관심이 없고 정치권은 적당히 눈감아 주는 분위기다.
“일단 지역방송과 종교방송이 큰 타격을 받게 될 거다. 일부는 아예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 지역방송이 사라지면 지방자치단체 비리나 부정을 견제하는 역할을 누가 할 건가. 여론 다양성이 위축되고 지역 이슈가 실종되면서 서울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종편이 직접 영업을 시작하고 지상파 방송사들까지 민영 미디어렙으로 빠져나가면 당장은 광고 매출이 늘어나겠지만 방송 시장 전체가 무한 경쟁에 휘말리게 된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청률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종편 역시 4개가 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나마 중앙일보 JTBC가 앞서 갈 것 같은데 역시 쉽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선정성 경쟁이 시작되면서 프로그램의 질이 떨어지고 보도 프로그램이 연성화하는 등의 문제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막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 종편이 민영 미디어렙으로 들어가는 게 MBC에도 좋다, 그런 이야기인가.
“그렇다. 종편의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종이신문의 권력이 그대로 방송으로 넘어온다고 생각해 봐라. 종편이 출범하면 지상파 방송사들 매출도 영향을 받게 된다. 종편과 민영 미디어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MBC 입장에서는 코바코 시스템이 혹처럼 느껴졌겠지만 혹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이게 될 수도 있다. 종편이라는 더 큰 혹이 있다. 아무리 손익계산을 해도 무한 경쟁 체제에서는 모두가 피해를 입는다. 시청률 경쟁이 시작되면 누구도 멈출 수 없다. 파이는 크게 늘어나지 않는데 자칫 방송 시장 전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

- 종편은 벌써 직접 영업을 시작했다. 신문사들의 조폭적 광고 영업 행태가 그대로 방송으로 넘어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진짜 문제는 한 번 허용하고 나면 나중에 바꿀 수 없다는 데 있다. 종편이 다른 케이블 채널 사업자들처럼 광고 영업을 시작하고 중간 광고도 하고 간접 광고도 하고 이렇게 모든 규제를 다 풀어주고 나서 나중에 정권이 바뀐 다음에 다시 규제를 강화할 수 있을 것 같나. 절대 못한다. 온갖 특혜를 받으면서 지상파 못지않은 영향력을 확보하고 규제는 케이블 수준으로 받겠다는 건데 지상파 방송사들이 이걸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하다가는 끔찍한 재앙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MBC도 한 번 민영 미디어렙에 들어가고 나면 나중에 다시 공영 미디어렙으로 돌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 미국의 경우는 어떤가. 공영 미디어렙이 없고 방송사들이 1사1렙으로 직접 영업을 하는, 완전한 시장 경쟁 체제 아닌가.
“그렇다. 대부분의 방송사들이 독자적인 미디어렙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방송사들이 공동으로 미디어렙을 설립하는 경우도 있다. 1사1렙 시스템의 문제는 시청률 경쟁을 규제할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시청률이 안 나오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버틸 수가 없다. 돈은 많이 드는데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프로그램은 아예 제작을 할 수가 없다. 뉴스도 매거진 포맷으로 바뀐다. 오락적인 요소를 많이 집어넣어 연성화하고 흥미 위주로 뉴스를 편집한다. 시청률이 유일한 기준이 된다. 물론 FCC(연방통신위원회)가 방송 허가권을 갖고 있긴 하지만 너무 선정적인 것을 규제하는 정도에 그친다.”

- 미국에도 PBS나 NPR 같은 공영방송이 있지 않나.
“제일 힘 없는 방송이 PBS다. 정부 보조금이 13% 정도인데 보조금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라고 하더라. 나머지는 협찬과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PBS는 교육 수준이 높은 오피니언 리더 계층에서 많이 본다. 특히 어린이 교육 프로가 전문화돼 있어서 아침이나 오후 아이들 보기 좋으라고 틀어놓는 경우가 많다. 시사 프로그램도 좋고. NPR는 ‘올 씽스 컨시더드(all things considered)’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가 좋다. 우리 같으면 손석희의 시선집중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대담과 토론, 시사적인 현안을 많이 다룬다. PBS나 NPR이 아니면 애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줄 방송이 없다. 폭력적이거나 차별적인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 나는 종편과 민영 미디어렙 이후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될까봐 걱정이 된다.”

- 우리나라에 공영 방송이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KBS는 물론이고 MBC 역시 신뢰를 크게 잃었다. 공영방송의 책무를 잊었다는 비판이 많다.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어떻게 권력 비판을 할 수 있겠나. KBS나 MBC나 독립된 지배구조를 확보하는 게 절실하다. 지금까지는 최소한 자본권력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웠지만 민영 미디어렙이 도입되고 완전 경쟁이 시작되면 그나마 남아있던 방송의 공공성이 완전히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MBC 기자들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죄수의 딜레마를 깨는 건 당신들의 몫이다. MBC가 공영 방송이라고 생각한다면 공영 미디어렙에 남겠다고 선언해라. 그리고 종편의 광고 직접 판매를 강하게 비판해라. 그게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는 최선의 선택이다. 대한민국 방송의 미래가 당신들에게 달려있다.”

Posted by 최진봉